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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금요일

[초대의 글(1)]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회상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회상

– 김형국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초대 조직위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편집자: ‘2026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가 지난 4월 21일부터 5월 3일 까지 서울에서 열리게 되었습니다. 본사는 올해 20년을 맞이하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를 조직하고 3년 여간 토대를 튼튼하게 잡게한 김형국 초대 조직위원장의 추억의 글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회상’의 글을 청하여 창립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 보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SSF) 초대 설립자 겸 위원장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와 바이올리니스트이자 SSF 예술감독 강동석

사진 속 인물은 내 기숙사 방을 잠시 찾았던 강동석 형(이하 강형)이다. 내가 나중에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이하 SSF) 활동에 참여하게 된 출발점이 아니었나 싶다.

1978년 봄이었다. 아마도 연주차 베이 지역(Bay Area: 샌프란시스코 대도시권)을 찾았던 강형이 버클리대 박사과정생 강형석(물리학 학위를 딴 뒤 방사선 전문의로 진로를 바꾸었다. 이하 강박)을 만나러 온 김에, 성대 은사를 모시고 중국집에서 가족 행사를 갖는다고 나를 불쑥 불러냈다. 그때 처음 만났다.

얼마 뒤 대학 기숙사인 ‘인터내셔널 하우스(I-House)’로 거처를 옮겼다. 나와 강형은 거기 동서생(同舍生)이었다.

I-House는 위치로나 외관으로나 내적으로나 대학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대학도시 버클리 관광에서 빠질 수 없는 명소다. 미국 최대 부호 록펠러의 상속자 주니어가 1930년에 사회 환원 차원에서 시작했다고 하니 흥미롭다. 스페인·이슬람 양식이 교차하는 아름다운 건축인데, 무엇보다 정교한 타일 장식이 돋보인다. 식당으로 들어서며 기숙사 입구 계단에서 바라보는 샌프란시스코만과 금문교의 풍경은 장관이다.

기숙사 수용 인원은 약 400여 명으로, 미국 학생과 외국 학생이 반반이다. 이 비율이 말해주듯 글로벌 문화 교류에 방점을 둔 곳이다. 거쳐 간 세계적 인사도 부지기수다. 파키스탄 수상 출신 줄피카르 알리 부토를 비롯해 노벨상 수상자 여럿이 이곳에서 공부했다. 인도 출신으로 미국 대사를 지낸 명문 인사이자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5년이나 머물며 문예창작과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기도 했다.

 

30대 후반에 뒤늦게 박사과정 공부를 시작한 내게 강형은 한참 후배였다. 기숙사 거주 층은 달랐지만, 아침저녁으로 마주치는 200여 명의 한국계 또는 한국 출신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고전음악 취향 덕분에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다. 그에게서 바이올리니스트 형님의 성장사를 들을 기회도 얻었다.

신문을 통해 간간이 접했던 강형의 이력을 내가 기억해내자, 그는 대구에서의 학창 시절과 어머니의 교육열 등을 들려주었다. 바이올린 조기 교육은 물론, 어머니의 치맛바람도 대단했다고 한다. 3남 1녀 중 막내였던 그는 유치원에 다니기도 전에 영어 문장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강형에게 전화를 했다. 형님을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무렵 강형은 음악 매니지먼트사에 몸담고 있었고, 2004~2005년 ‘뮤직 알프’ 실내악 축제를 맡아 진행하고 있었다. 기획 측 교수들과 함께 새로운 외부 후원을 찾고 있었고, 나에게도 참여해 달라고 했다.

개인 후원자와 기업 후원자를 찾는 일이 익숙하지 않았던 터라 쉽지 않았지만, 뜻밖에도 성과를 냈다. 서울시장과 고위 간부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무턱대고 이야기를 꺼냈다. 마침 문화국장이 적극 나서 주었다. 권영규 국장은 서울시 공무원으로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에 파견 근무를 했던 문화 전문가였다. 그 인연이 서울시 후원을 이끌어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이는 훗날 SSF가 주요 문화행사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이야기는 SSF 초기 뉴스레터 등에도 이미 소개된 바 있다.

 

사진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이 한 장은 내 개인사에서 중요한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기숙사 책상 아래쪽에 놓인 사진 속 우리의 자리가 보인다. 사진으로나마 기억을 더듬어 본다. 미국으로 가기 전, 제1회 SSF 때 참여했던 외국 연주자들을 국악과 좋은 음식으로 대접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1970년 UCLA에서 석사 과정을 밟던 시절, 지금도 그렇지만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며 외롭게 1년을 보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일상의 일부였다. 가끔 전해오는 소식이라고는 초등학교에 다니던 큰딸의 학업 문제로 아내가 학교에 불려갔다는 이야기 정도였다.

유학 생활은 개인의 삶을 넘어 사회적 맥락과도 맞닿아 있다. 당시 국가는 가난했고, 내 형편도 넉넉하지 못했다. 가족의 도움을 받으며 어렵게 유학 생활을 이어갔다. 1980년대에도 기숙사 생활은 쉽지 않았고, 음식 문제로 크고 작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1966년 동아음악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은 강형은 이듬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비행기에 올랐지만, 그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부모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홀로 길을 개척해야 했다.

그의 행보는 한국 음악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려는 선구자의 길이었다. 그는 신동으로 불렸으며(김동필, 『이후를 사랑하고 지켜라』, 『백년의 사랑들』, 2020), 1953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서울 예고(예원학교)로 진학했다.

이러한 선구자들의 노력 덕분에 강동석, 정경화의 바이올린뿐 아니라 한동일의 피아노 등 한국 클래식 음악계가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실 가운데 하나가 바로 SSF다. 세계적인 음악제가 그렇게 탄생했다.

지난 4월 21일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2026’ 개막식 마치고,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와 이날 연주에 참여한 베이스바리톤 안민수, 신박듀오의 피아니스트 신미정-박상욱 기념촬영
베이스바리톤 안민수의 개막일 공연-반주 피아니스트 신미정
베이스바리톤 안민수는 개막일 피아니스트 신미정 반주로 프란츠 슈베르트의 노래모음집 ‘백조의 노래’중 5곡을 불렀다.

편집자: 초대의 글 써 주신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약력

김형국 金炯國

1942년 경남 마산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고,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버클리)에서 도시계획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이던 사이(1975~2007년), 동 대학원 원장, 〈조선일보〉 비상임 논설위원, 한국미래학회 회장, 정년 뒤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 제1기 민간위원장을 역임했다. 〈한국공간구조론〉, 〈고장의 문화관광〉 같은 전공 서적에 더해 〈장욱진: 모더니스트 민화장〉, 〈김종학 그림 읽기〉, 〈활을 쏘다〉, 〈우리 미학의 거리를 걷다〉, 〈박경리 이야기〉, 〈바람이 일어나〉 같은 방외傍外 서적도 냈다. 인문학 연구가 학예일치藝文一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바른 글쓰기 요령을 담아 〈인문학을 찾아서〉도 냈다. 인문적 행보로 원주의 토지문화관 건립위원장(1995년), 서울스프링페스티벌 조직위원장(2006년) 등도 맡았다. 2014년 이래는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이다.

 

글/사진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제공, 정리/ 김운하 발행인, 안주영 디자인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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