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아니스트 이혜수 (이하 혜수) 에게 피아노를 언제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어린 시절, 지금처럼 디지털이 발달된 시대도 아니었기에 늘 스스로 놀거리를 찾아야 했다. 집에 있던 업라이트 피아노가 그 시작이었다. 소리가 재미있었던 걸까,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고.
부모님은 음악과 전혀 관련이 없는 분들이었기에 정식 교육은 비교적 늦게 시작되었다고 한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초등학교 3학년 즈음 어머니가 동네 피아노 학원에 혜수를 데려갔다. 전공 가능성을 상담하러 갔지만, 피아노를 쳐보라는 말도 없이 손과 체구를 보더니 “손이 작아서 전공은 힘들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그녀에게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그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피아노를 제대로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첫 계기가 됐다. 좋아하는 것을 타인의 판단으로 부정당하는 데 대한 저항감에서 비롯된 결심이었다고.
이후 다른 학원으로 옮겨 몇 개월간 레슨을 받은 뒤, 예술의전당 영재아카데미 오디션을 통해 유지수 교수를 만나,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치며 줄곧 그 문하에서 공부했다. 유지수 교수는 ‘비엔나 3총사’로 불리는 파울 바두라-스코다의 제자 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기보다 학업에 더 엄격하셨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중학교 시절에는 연습보다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고등학생이 되고 학업에 안정이 되자, 그녀의 관심은 다시 음악으로 쏠렸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런던 필하모니 내한 공연을 혼자 보러 간 일은 그녀에게 큰 여운을 남겼다. 그날 연주된 차이코프스키 ‘비창’ 교향곡의 여운은 오래도록 남았다고.
그 이후 베토벤, 브람스, 말러, 브루크너 등 교향곡에 깊이 빠져들었고, 자연스럽게 유럽 오케스트라와 음악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유럽에 가고 싶다는 막연한 꿈도 그때부터 자라났었지만, 당시 미성년자였던 혜수는 유학의 꿈을 성인이 된 이후로 미루며 고 3 입시를 준비했다.
당시 입시는 입시생 혜수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왜 모두가 같은 곡을 연주해야 하는지, 왜 연주자의 선택권이 없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내가 말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정해진 곡과 스타일 안에서 ‘무난한 연주’를 요구받는 것이 답답하게도 느껴졌다고.
특히 지망하던 학교의 지정곡이었던 멘델스존 ‘엄격 변주곡’은 당시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자유로운 낭만성에 빠져 있던 그녀로서는 그 음악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입시의 기억. 당시 지원했던 두 곳의 학교 중 한 곳에는 합격했지만, 원하던 학교에는 불합격의 결과를 받아야 했다. 비록 부모님은 재수를 권했지만, 그것을 계기로 혜수는 재수 대신 독일 유학의 길에 올랐다고 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미국이 아닌 독일을 선택했고, 부모님에게도 단 한 번의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 시험에서 떨어지면 피아노를 그만두겠다.” 라는 생각으로 가까스로 허락을 받았지만, 모든 준비는 혼자 해야 했다. 학창 시절 모아둔 돈을 털어 단 3개월 만에 준비를 마치고,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올랐다. 첫 시험을 위해 찾은 드레스덴에서 두 번째 순번으로 연주를 마친 그녀는 인터뷰 자리에서 즉석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다. 실기에 이어 이론 시험까지 통과한 후, 시내를 걸으며 느낀 감동은 잊을 수 없다.
젬퍼 오퍼와 고풍스러운 구시가지를 보며 마치 소설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한 혜수는 우테 프룩마이어-필립 교수를 만나게 됐다. 그녀는 이후 그녀에게 제2의 어머니이자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고, 드레스덴에 매료된 그녀는 예정된 다른 도시 시험들을 취소하고 드레스덴에 정착하기로 했다고.
18세의 나이에 시작된 유학생활은 쉽지 않았지만, 동시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한 혜수는 모든 선택을 스스로 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함께, 완전한 자유와 독립을 처음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녀의 첫 친구는 학교 도서관. 매일 아침 연습을 하고,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서 음악을 탐구하는 일상이 이어지며, 모차르트 오페라를 정주행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었던 그 시절은 그야말로 황홀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중 이탈리아 콩쿠르를 통해 안드레이 야진스키 교수를 만났고, 이후 3년간 매년 여름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가르침을 받았다. 당시 야진스키 교수의 교육 모습은 지금도 그녀에게 이상적인 교육자의 모델로 남아있다고 한다.

이후 라이프치히에서 우연히 자크 루비에 교수를 만나게 되었고, 그의 권유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향하게 된다. 잘츠부르크는 그녀의 계획에 없던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녀의 인생은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루비에 교수의 지도 아래 다양한 레퍼토리를 공부하며 깊이 있는 음악적 성장을 경험할수 있었고, 졸업 후 참가한 맨체스터 콩쿠르에서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입상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연주자의 길을 준비하려던 순간, 코로나19가 찾아왔다. 팬데믹으로 모든 활동을 멈출 수 밖에 없었으나 그 시기 사사인 루비에 교수에게서 티칭 조교 제안을 받았고, 그렇게 교육이라는 또다른 길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어느 덧 그녀가 잘츠부르크에 정착한 지도 11년째가 되었다. 그녀에게 잘츠부르크는? 크지 않은 도시지만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자연 환경 덕분에 학업과 예술에 집중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다양한 페스티벌을 통해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고, 그녀에게 충분히 특별한 공간으로 다가온다고.
특히 자신에게 연주자와 교육자라는 기회를 준 루비에 교수와의 에피소드는 셀 수 없이 많지만, 그녀에게 특별한 순간은 교수의 옛 제자들과 얽힌 기억이라고 한다. 다비드 프레이의 연주 후 뒷풀이를 하며 교수와 함께 음악과 인생에 대한 많은 조언을 나눈 시간은 잊을 수 없다고. 빈 콘체르토 하우스에서 볼로도스의 독주회를 함께 보러갔는데, 볼로도스와 루비에 교수의 20년만의 재회에 옛 스승과 제자라는 이름으로 마주하던 그 자리에 함께 하고, 인간적인 모습과 진솔한 대화를 나눈 시간은 지금도 꿈같은 시간이다. 루비에 교수의 스승이자 모리스 라벨의 제자인 블라도 페를뮈테르 연주자의 이야기를 비롯한 과거의 음악가들, 전설적인 인물에 얽힌 교수의 추억과 기억은 루비에 교수의 전기 한두권으로는 모자랄 정도.

연주자와 교육자를 넘나들며 잘츠부르크를 베이스로 활발히 활동을 펼치고 있는 피아니스트 이혜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수학하며 유럽 피아노 전통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연주자다. 서울에서 태어나 열 살에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예원학교와 서울예술고등학교를 거쳐 독일 드레스덴 국립음대(HfM Dresden)에서 학사 과정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에서 피아노 솔리스트 석사 및 최고연주자 과정을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 재학 중에는 우테 프룩마이어-필립, 자크 루비에를 사사했으며, 안드라스 쉬프, 안제이 야신스키, 릴리아 질베르스타인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과의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음악적 시야를 넓혔다.
국내에서는 음악세계 콩쿠르, 음악교육신문 콩쿠르, 틴에이저 피아노 콩쿠르 등에서 우승하며 주목받았고, 국제 무대에서는 영국 RNCM James Mottram 국제 피아노 콩쿠르, 이탈리아 로마 콩쿠르, 아시아 국제 쇼팽 콩쿠르 등에서 입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또한 바이로이트 리하르트 바그너 협회, 라이프치히 멘델스존 재단, 함부르크 Gisela & Erich Andreas 재단 등 다양한 장학재단의 후원을 받았으며, 오스트리아 장학금 및 독일 국가 장학 프로그램 등에도 선정된 바 있다.
2013년 드레스덴 국립오페라극장에서 공식 데뷔한 이후 암스테르담 라디오 생중계 연주, 맨체스터 RNCM 콘서트홀에서의 리버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비롯해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세르비아 등지에서 독주, 실내악 및 협연 무대를 이어왔다.

지난 4월 12일에는 프랑스에서 피아니스트 니키타 셰스타코프와 프렌치-러시안 테마의 듀오 연주를 성황리에 치렀다. 이번 연주에서는 드뷔시와 라벨의 솔로 작품을 비롯해 라흐마니노프 모음곡 2번, 미요의 ‘스카라무슈’, 그리고 니키타 셰스타코프의 위촉 신작이 연주되었다.
현재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며, 연주와 더불어 모짜르테움의 루비에 교수 클래스의 티칭 교수로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글: 허미리 특집부장
사진: 피아니스트 이혜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