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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5일, 목요일

잘츠부르크에서 만난 바그너, 그리고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베이스바리톤 안민수

바그너의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네덜란드인(홀랜더)’ 역으로, 잘츠부르크 축제하우스(Festspielhaus) 펠젠라이트슐레에 한국인 베이스바리톤 안민수가 무대에 올랐다.

이번 공연은 잘츠부르크 란데스테아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극장 측에서도 1년 중 가장 큰 규모와 공을 들이는 프로젝트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연주자 참여는 공식 오디션을 통해 이루어졌다. 안민수는 약 3년째 함께 일하고 있는 스톡홀름에 기반을 둔 스반홀룸 매니지먼트를 통해 오디션 제안을 받아 오디션을 치를 수 있었다고 했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오페라에서 주역인 네덜란드인을 연기하고 있는 베이스바리톤 안민수

바그너 오페라가 위대한 이유는 명확하다. 오페라 작곡가 중 유일하게, 바그너는 음악과 대본을 모두 직접 쓴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라고 안민수는 의견을 밝혔다. 일반적으로는 극작가가 대본을 쓰고, 작곡가는 그 대본에서 영감을 받아 음악을 붙이지만, 바그너는 언어와 음악을 하나의 유기체처럼 엮어낸다.

그 결과, 텍스트와 음악이 빈틈없이 맞물려 시종일관 완결성을 유지한다.

슈베르트 가곡을 공부하거나 연주할 때 느끼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희열과 쾌감—텍스트와 음악의 완벽한 결합—을 바그너는 오페라라는 거대한 형식 안에서, 그것도 5시간이 넘는 작품에서도 끝까지 유지한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바그너 작품 중 비교적 짧은 2시간 반 분량이지만, 풀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그 시간 동안 가곡에서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완벽함을 오페라 전체에서 경험할 수 있다.

바그너는 오페라의 스케일 자체를 확장한 선구자였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오페라 세계를 열었고, 특히 언어 이해도가 작품의 핵심을 이룬다.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작곡가가 직접 대본을 쓰고 음악을 붙였기에, 독일어의 뉘앙스와 의미가 음악 속에 깊이 녹아 있다. 그만큼 독일어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요구되며, 이 때문에 아시아 성악가가 바그너 작품에서 주역을 맡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바그너 오페라는 모든 것을 암보로 소화해야 한다. 가사를 이해하고 외우는 것은 기본이고, 무대 동선, 상대 배역의 대사까지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요구는 오랜 시간 축적된 훈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안민수는 어린 나이에 유학을 와 학사부터 시작하며 현지에서 독일어를 체계적으로 훈련받았고, 오페라와는 별개로 가곡 공부도 꾸준히 해왔다. 인생의 반려자이자  리트 듀오 신미정과 함께한 음악 활동도 큰 자산이 되었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오페라 오디션에서는 10분이 넘는 아리아 〈Die Frist ist um〉을 불렀는데, 사실 정식 레슨을 한 번도 받지 않은 곡이어서, 낙방을 예상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 가곡을 연구하며 쌓아온 해석 능력으로 곡을 풀어냈다.

안민수는 이 아리아에 대해, 오페라에서 주인공이 육지에 올라 처음 부르는 곡이라고 소개했다.  하인리히 하이네의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작품은, 젊은 시절 바그너가 대륙을 횡단하며 폭풍우 속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실제 경험과 상상력이 결합해 탄생했다. 거만하게 바다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던 선장이 신의 저주를 받아 영원히 바다를 떠돌게 되고, 7년에 한 번 육지에 올라 진정한 사랑을 만나야만 죽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등장하자마자 10분 넘게 이어지는 이 아리아는 초기 바그너의 음악적 특징이 잘 드러나 있어 연주자로서도 흥미로운 곡이다.

펠젠라이트 슐레의 암벽을 깎아 만든 무대

바그너 작품은 오디션에서도 경험자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안민수의 나이는 아직 비교적 젊은 편이고, 이 역할은 워낙 어렵기로 유명하다. 경험도 많지 않았기에 오히려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임했고, 그것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 안민수는 당시 오디션 현장에서 나중에라도 다른 역할로 불러준다면 좋겠다는 열린 태도가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며 감사를 표했다.

바그너 음악은 흔히 동양인이 하기 어렵다고 여겨진다. 드라마틱한 음색, 당당한 체격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조건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안민수는 스스로를 ‘바그너 전문 가수’라고 규정하지는 않지만, 언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완벽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그너를 대하고 싶으며, 어릴 때부터 롤 모델이었던 연광철 선생님의 영향도 크다고 밝혔다.

안민수는 현재 음악 연주활동 외에도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교육자로서의 마인드도 잃지 않고 있다. 그가 늘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단순히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왜 작곡가는 이 단어를 이 자리에 썼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태도와, 언어와 음악의 관계를 탐구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전달했다. 특히 원어민들에게 받은 훈련과 가곡 대가들에게서 배운 철학적 접근 방식은 지금의 안민수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는 듯 하다고.

실제 배를 연상하는 무대에서, 안민수는 밧줄을 타고 움직이며 노래를 불렀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공연에 올린 펠젠라이트슐레는 1,500석 이상을 수용하는 거대한 공연장이다.

가파른 암벽을 깎아 만든 승마장을 개조한 공간으로, 자연을 그대로 모티브로 삼아 천장이 높고 무대 규모가 압도적이다.

특별히 이번 공연에서는 4층짜리 배 세트가 설치됐고, 안민수는 무대에서 실제 밧줄을 이용해 클라이밍하며 이동해야 했다. 사실 노래 자체로도 힘든데, 다른 오페라보다 훨씬 액티브한 동작까지 요구되는 등, 쉬운 무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 과정에서 체력이 눈에 띄게 향상된 것이 아닌가 – 라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보였다.  안민수는 평소에도 하루 1시간 이상 자전거를 타며 체력 관리를 해왔지만, 무대 위에서는 ‘7년에 한 번 육지에 올라오는 존재의 고단함’이 자연스럽게 몸으로 표현됐다. 공연 기간 내내 근육통에 시달렸고, 손에는 굳은살이 박힐 정도였다며, 쉽지 않은 공연이었다고 회상했다.

규모가 큰 공연이기도 했으나, 연습 자체도 체력적으로도 입안이 헐 정도로 고된 일정이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리허설이 이어졌고, 오전·오후 각 4시간씩 진행됐다. 예를 들어 12분짜리 아리아 하나를 여러 파트로 나눠 연출과 함께 세밀하게 다듬고, 다양한 동선과 제스처를 반복해서 시도했다. 그 와중에도  안민수는 제자 레슨과 주일 교회 예배를 빠지지 않았다. 체력적으로는 한계에 가까웠지만, 결과는 충분히 보람 있었다. 또한 배우자의 내조도 빼놓을 수 없다. 신미정은 안민수의 체력을 위해 녹용을 달이고,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며 신앙적으로도 내조하는 등, 옆에서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왼쪽부터 베이스바리톤 안민수, 배우자 피아니스트 신미정.

그러나 비록 연습 과정은 힘들었지만,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고 극장 관계자들의 좋은 평가와 뜨거운 커튼콜을 받은 것은 예상치 못한 기쁨이었다. 그에게 총 두 차례의 공연 모두 잊지 못할 경험으로 남았다.

그와 별개로 공연 중에 빈 황금홀에서 한오필과 함께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기회도 잡았다. 음악의 스타일로 보면, 바그너와 모차르트는 음악적 무게감과 스타일이 극명하게 다르다. 섬세함과 급작스러운 전환이 많은 모차르트 음악으로의 전환은 쉽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것을 기회로 삼아 안민수는 두 공연 모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한오필과의 협연, 황금홀 데뷔 모두 처음인 그에게 협연자 선발 오디션 역시 또다른 도전이었다. 하지만 ‘괜찮을까’라는 생각보다는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임했고,  합격 여부와 관계없이 준비 과정 자체가 의미있는 도전이었다고.

그래서였을까, 펠젠라이트슐레에서의 거대한 액션과 대비되어, 안민수는 황금홀에서의 네 곡 정도를 비교적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부를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더욱 뜻깊었던 점은, 이 날  MDW에서 가르쳤던 제자가 함께 무대에 올라 듀엣을 함께할 수 있어 교육자로서도 뜻깊은 자리이기도 했다고. 황금홀은 세계 최고의 음향을 자랑하는 공간으로, 그날의 울림과 분위기를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잘츠부르크와 비엔나, 두 꿈의 무대들에서 연이어 공연할 수 있었던 것에 그는 여전히 깊은 감사를 느낀다고.

황금홀에서 한오필과 공연 중인 안민수.

안민수는 앞으로도 오디션은 계속 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도전이 힘들다고들 하지만, 오히려 그는 도전을 통해 살아 있음을 느낀다. 바그너에서도 더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고, 개인적으로는 성격이 강한 악역에도 관심이 많다. (예: 베르디 「오텔로」의 이아고, 바그너의 알베리히나 암포르타스 같은 캐릭터)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캐릭터를 무대 위에서 표현해보고 싶다고.

그는 학생 시절 스트라빈스키의 현대 오페라 「레이크 시의 여정」에서 닉 쉐도우(악마) 역을 연출했을 때, 당시 큰 호평을 받았고, 그때 느낀 카타르시스도 아직 생생생히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안민수의 평소 성격은 배려를 중시하고 정돈된 삶을 추구하는 편이지만,그렇기 때문에 무대에서는 그와 다른 면모를 표출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는 매 역할마다 음악적인 테크닉을 넘어서, 그 인물 자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바그너 음악에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순간들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깊숙이 파고들어 숨이 막힐 정도의 충격을 주는 음악.

안민수는 그 카타르시스는 다른 어떤 음악에서도 쉽게 경험할 수 없다고 벅찬 마음을 내보였다. 단순히 주역으로서, 유명 음악가로서의 대우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그너 자체가 너무 하고 싶었다고.

다소 이른 나이인 40대에 바그너를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는 이제 큰 산 하나를 넘은 느낌이다.

안민수는 지난 11월 한국 전주와 부산에서 피아니스트 박상욱과 슈만의 “시인의 사랑”가곡 투어를 성황리에 마쳤고, 오는 12월 빈 슈테판대성당에서 매년 열리는 Adventkonzert에 참여하므로서 2025년의 연주일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26년 1월에는 빈 시청사(Rathaus)에서 열리는 블루멘발 Blumenball 무도회의 축하 무대가 계획되어 있고, 2월에는 신년 음악회에 피아니스트 신미정과 함께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글: 허미리 특집부장 / 사진 제공: 안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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