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새로운 극장장이 부임한 이후 비엔나 폭스오퍼는 레퍼토리와 단원 구성이 눈에 띄게 국제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극장장은 가수 발굴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며 매년 수많은 오디션을 진행하고, 미국 기반의 가수들이 비엔나까지 오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2년에 한 번씩 직접 미국 오디션 투어에 나선다고 한다.
2년 전 예일대학교, 줄리어드, 커티스를 방문한 오디션 투어에서 당시 예일대에 재학 중이던 테너 김세영이 발탁되었다. 십여 년을 살아온 미국을 떠나 유럽에서 풀타임으로 활동하기로 한 결정은 쉽지 않았으나, 그는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으로 과감히 선택을 내렸고, 그렇게 비엔나로 향하게 되었다고 한다. 폭스오퍼에서 왕성히 활동을 펼치고 있는 테너 김세영을 만났다.

테너 김세영(이하 김세영) 은 음악가 집안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에 노출되며 성장했다. 성악 전공자인 어머니와, 누나는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친척 중에서도 성악가와 첼리스트, 작곡가 들이 있어 어린 시절부터 쉽게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김세영은 어릴 때 부터 아역배우로 오페라와 뮤지컬 무대에 올랐고, 무대 위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스태프, 그리고 관객들까지—all이 힘을 모아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게잠트쿤스트베르크(Gesamtkunstwerk)’의 경이로움은 어린 세영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고 한다.
“무대에서 조명을 받으며 객석 쪽을 바라보았을 때,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단원들과 밝게 조명을 받고 있던 지휘자님, 그리고 무대 뒤에서 빠르게 움직이며 공연을 완성하는 스태프의 모습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모아 수십,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들을 오늘의 무대로 되살아 나게 하는 것. 그 모습과 순간이 정말 경이로웠어요. 커튼콜때 저희의 공연에 행복해하며 박수를 보내주던 관객들의 표정들을 보며 느낀 감정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는 무대 위에서 느꼈던 벅찬 감정을 잊을 수 없었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오페라 가수가 되겠다고 결심했으며 그 마음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고 말한다.

김세영은 “Rossini 롯시니 테너” 이다. 테너는 본래 성장 과정이 가장 까다로운 성부로 여겨지지만, 그중에서도 극고음과 기교가 요구되는 레퍼토리는 흔히 ‘롯시니 Rossini 테너’로 불린다. 극 고음, 기교가 많은 오페라들을 많이 작곡한 작곡가의 대표자가 롯시니이기 때문. 따라서 그런 특성을 가진 악기를 타고난 테너들을 롯시니 테너라고 부르는데, 김세영은 이러한 특성을 자연스럽게 갖춘 테너로, 비교적 높은 기교와 고음을 안정적으로 소화하는 능력이 강점이다. 하지만 그의 본질은 고음과 기교에 특화된 리릭 테너라고 소개한다.
“제가 가지고 있는 큰 장점은 테크닉적인 부분에서 기교적인 부분을 비교적 쉽게, 그리고 컨디션을 잘 타지않고 일관적으로 안정되게 부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연기나 무대 장악력과 같이 노래 이외의 부분에서도 늘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보통 역할 외에도 정말 익스트림한 역할까지 비교적 쉽게 해낼 수 있는 다능함이 극장에게는 안정과 편리함으로 다가오는 듯 해요.”
김세영은 미국과 유럽 오페라 환경의 가장 큰 차이를 극장 규모에서 찾는다.
미국의 오페라 극장은 유럽 대극장보다 2~3배 큰 경우가 많아, 큰 오케스트라를 뚫고 객석 끝까지 전달되는 ‘효율적인 발성’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고, 한창 전성기의 이탈리아 성악가들의 “골든 에이지” 창법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이는 한국 성악 교육과도 유사한 부분이라고.
또한 미국에서는 노래뿐 아니라 연기·무대 표현·춤 등 ‘종합 배우’로서의 역량을 중시한다. 김세영 역시 재학 중 연기, 즉흥, 발레, 파트너 댄스, 스테이지 컴뱃, 알렉산더 테크닉 등 다양한 훈련을 받아 왔고, 이러한 경험이 무대에서의 자연스러운 연기력으로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서울에서 자랐고 뉴욕에서 10년 넘게 생활한 김세영. 그에게 비엔나는 처음엔 조용하고 아담한 도시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비엔나 시민들이 음악과 오페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매일 느끼게 되고, 그 애정은 세계 어디에서도 경험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말한다.
그런 도시에서 국립극장의 단원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은 세영에게 큰 자부심이자 책임감으로 다가오며, 그는 매 공연마다 최선을 다해 무대에 오른다고 강조한다.
“오스트리아 사람들, 특히 비엔나 시민들이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고 오페라를 소중히 여기는지 매일 느낍니다. 세상 어디에도 이렇게 오페라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애정을 보내주는 도시는 없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매 공연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김세영의 롤모델은 언제나 소프라노 홍혜경이다. 홍혜경의 인터뷰에서는 언제나 “오랫동안 건강하게 노래하기 위해 매일의 삶에서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이는지”를 말하는데, 김세영 또한 그녀처럼 마음과 목소리를 잘 지켜 오랫동안 노래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인종차별이 훨씬 심했던 시대에 동양인으로 모든 장벽을 본인의 노래, 음악, 연기, 압도적 무대 장악력으로 극복하여 세계 무대를 뚫어낸 홍혜경의 궤적은 세영에게 큰 용기가 되었다.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열 배는 더 잘해야 캐스팅될 수 있다”는 홍혜경의 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는 세영은, 아직 스스로를 “하룻강아지”라고 표현하지만,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해 왔다고 한다.
“아직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 많은 선배님들에 비하면 저는 하룻강아지예요. 그래도 하룻강아지라도 어딘가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가수로서의 저 자신과 저만의 브랜드를 만들어가기 위해 매일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재작년 미국에 있을 때 까지만 해도 제가 비엔나의 폭스오퍼에서 일할 줄, 또 세계 제일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데뷔할 줄은 생각도 못했지요.”

김세영은 앞으로도 “무대에서 눈길이 가는 가수”가 되기 위해 계속 정진할 것이라고 말하며, 앞으로 마주하게 될 어려움을 알고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자신감과 인내심, 그리고 남들보다 열 배는 더 빛날 수 있는 노래와 연기력을 갖춘 가수로 오래도록 무대에 서고 싶다고 다짐한다.
폭스오퍼 2년 차인 올해 세영은 총 8개의 역할을 맡는다. 지난해 공연했던 두 작품을 제외하면 모두 새로운 작품이자 새로운 배역이다.
가장 큰 하이라이트는 새로운 프로덕션 La clemenza di Tito (티토의 죽음) 의 타이틀 롤 ‘Tito’를 맡는 것이며, 지난해 큰 호응을 얻었던 Kaiserrequiem (황제의 레퀴엠)의 Harlekin 역으로 다시 무대에 선다. 그 외에도 La Traviata 라 트라비아타, Carmen 카르멘, Die Zauberflöte 마술 피리, Hänsel und Gretel 헨젤과 그레텔 , Der Rosenkavalier 장미의 기사, Die Fledermaus 박쥐 등 다양한 작품에서 주요 역할로 출연한다.
글: 허미리 특집부장 / 사진: 허미리 특집부장, 김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