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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8일, 목요일

[새해소감] 푸르른 날들의 2025년 – 김운하 발행인

<발행인의 새해소감>

밝아 온 을사년(乙巳年)에 붙이는 새해 소망

알프스 자락에 뜬 새해

 

김운하 새로운 한국 발행인

나는 1962년 한국에서 견습 기자로 신문사에 입사한 이래 언론인으로 올해 63회째의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올해 87세, 언론계 생활에서만 아니라 나의 생애 중에서도, 가장 을씨년스런 새해를 맞이했다.

자연적인 연로화 현상으로 건강이 온전치 못한 채 종합검진으로 연말에 병원에 입원하여 제야와 새해를 병실의 침상에서 맞이한 것도 마음을 서글프게 한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원래 나는 뱀을 몹시 싫어했다. 증조모가 인천내리교회의 미국 선교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은 이래로 기독교 신앙가족이 된 가문은 나로 하여금 어린 시절부터 ‘착한 예수님의 아이’로 자라게 했다. 나는 8세 때부터 손수 붉은 색실로 옷깃에 십자가를 색이고 ‘예수 어린이’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방하고 다녔다. 학급 급장으로 내리 당선되면서. 종래는 해방 후 전국 최초로 생긴 초등학교 전교 학생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까지.

중 1년 때 우리 마을에 어마어마하게 큰 검은 구렁이가 나타났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크기는 5-7미터 정도, 굵기가 나무 기둥 같았다. 마을 이집 저집을 넘나들었다. 기겁을 한 마을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달려왔다. 용감한 ‘예수 소년’이 빨리 나서라는 것이었다. 나는 야구 방망이를 들고 뛰쳐나갔다. 교회서 뱀은 인류를 타락시킨 사탄으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마을로 처들 어 온 사탄과 대적해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골목으로 뛰쳐나가자 그 큰 구렁이는 우리 집 담장으로 기어 올라가 우리 집으로 넘어 들어오려는 순간이었다. 순간, 나는 혼신을 다하여 야구 방망이로 뱀의 머리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나를 둘러싸고 함성을 지르며 응원을 했다. 얼마를 내려 쳤는지, 그 큰 구렁이가 타작되듯이 납작하게 되었을 때, 나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만세! 만세! 만세!” 마을 사람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죽은 뱀을 끌고 바다로 가서 버리기까지의 추억, 나의 일생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1905년 을사년은, 이완용 등 오적(五賊)들이 일본에 합방하는,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체결한 망국의 해이다.

2005년 나는 오스트리아에 온 이래로 서양 문화와 특별히 유럽의 기독교 문화로부터 정서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다. 유럽은 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흉노와 중세 시대의 몽고의 유럽 침략 이후 뱀과 용으로 중국과 동양인을 은유로 비하하는 문화를 만들어왔다. 이래저래 나는 뱀, 그와 연관된 을사년의 해를 싫어 해 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12.3비상계엄령 선포’는 나로 하여금 엉첨난 당혹감에 휩싸이게 했다. 윤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죄와 직권남용으로 국회의 탄핵을 받았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육군 총사령관 등 10여명의 군사령관들이 내란의 중요임무 수행죄로 구속되었다. 윤 대통령에게는 한국 헌정사상 최초로 12월 31일 그뭄날 내란 우두머리죄와 직권남용죄로 구속영장이 발부 되었다.

잇달아 일어난 무안제주항공여객기 사고로 많은 승객들이 귀중한 생명을 잃게 되었다. 나는 깊은 애도 속에서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나의 제야는 이렇듯 황당하고, 을씨년스럽고, 슬픔속에서 보내면서, 마침 마리아 성당에서 울려 나오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시간은 결국 자신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새해를 규정하는 것도 결국 개인에 딸려 있는 것이 아닐까? 시간은 과학적으로 종교적으로 여러 가지의 해석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정해진 자연현상으로, 또는 신이 창조하고 운행하는 것 등으로—, 여러 가지의 해석이 존재하고 있다.

모든 인식도 새롭게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뱀에 대해서도 우리 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지혜롭고, 유연스럽고, 장수하는 상징으로 좋게 여겨 왔다. 그동안 가져왔던 우리들의 인식도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연말에 서울에 있는 친지로 부터 토마스 카라일(1795-1881)의 시, ‘오늘’(Today)을 우연한 대화 끝에 알게 되었다. 이 시의 핵심은 ‘오늘은 아침에 영원에서 나왔다가, 밤에 영원으로 돌아간다. 사람들은 오래 동안 보지 못한 이 진리를 일찍 보고,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것이다.

토마스 카라일은 이 시에서 오늘이 나오고 가는 영원에 대해서는 말한 것이 없다. 그는 단지 오늘을 ‘푸르른 다른 날’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카라일이 한 평생 삶의 근원과 종말, 영혼의 존재와 영원의 문제를 안고 고민해 왔다는 점에서 나의 생각을 더 확장해 볼 수 있지 않을까하고 명상에 잠겼다.

오늘이 나오고 가는 영원의 핵심은 사랑, 희락, 성화(聖化)가 아닐까? 주는 것과 신뢰와 존중의 사랑, 배고프지 않고 건강하고 평안하고 즐겁고 기쁜 희락, 모든 생명을 신으로 보고 만유사랑을 너머 신으로 완성되는 성화, 이것이 영원의 핵심이 아닐까? 이것이 그가 말한 푸르른 오늘의 핵심이 아닐까?

나도 나 개인적인 시간의 결정을 할 수 있다면, 이 핵심들이 오늘로 오는 2025년 을사년, 이 같은 푸르른 오늘들로 날마다를 풀어나가는 새해 2025년, 이 같은 새해를 염원해 본다.

사랑하는 오스트리아 동포님들, 사랑하는 조국의 동포님들, 사랑하는 인류들, 푸르른 새해를 누리시길 간절히 염원합니다.

 

글: 발행인 김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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