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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5일, 목요일

1. 윤이상 선생과 15년, 그리고 그 후

시작하는 말

 

왕성한 작곡생활을 하던 베를린 시절의 윤이상 선생의 모습

 

윤이상 선생님과 내가 이 세상에서 함께 한 시간은 15년이다. 그러나 선생님과의 관계는 1995년 11월 3일 별세하신 이후로도 아직 까지 계속되는 관계이다. 우리는 음악에서 스승과 제자, 동역자 였다. 한국 민주화 운동과 민족 통일운동에서는 지도부 구성원으로 함께 일한 동지였다.

나는 이야기를 더 하기 전에 이 글에서 윤이상 선생님을 표기 하는데 대해 잠시 말 하려고 한다. 윤이상 선생님은 나에게 있어서 여러 면으로 분명히 선생님이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실이나 회고록에서는 선생님이나 위인이 일반화 되어야 하기 때문에 ‘님“이라는 존칭은 생략한다. 아호가 있으면 아호로 부르는 것이 경애함을 나타내는 것임으로 좋을 것이다. 그러나 윤이상 선생님의 경우 아호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여러 곳에 문의 중이지만, 아직 듣지를 못했다. 내가 평소에 선생님에 대하여 부르던 대붕(大鵬)이란 이름을 선생의 아호로 생각하고, 이 글에서는 ’대붕‘또는 대붕 선생으로 호칭하는 것에 대해 독자들의 양해를 먼저 구하고 싶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붕‘(鵬)새는 크기가 수 천리에 달하며 한 번에 9만 리를 난다는 새이다.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Luise Rinser)는 윤이상 선생님을 ’상처 입은 용‘으로 표현하였지만, 이 이름도 매우 좋으나, 나는 대붕으로 부르기를 더 좋아 했다.

내가 대붕 선생을 처음 뵈온 것은 1981년 5월 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김대중 선생 구출 긴급세계대회’에서였다. 그때부터 1995년 11월 3일 별세하시기 전 까지 15년 넘게 대붕 뿐만 아니라 양가의 온 가족이 매우 가까운 사이로 지내왔다.

​먼저 개인적이고도 가족적인 관계를 소개하고 싶다. 나의 딸 린다(Linda Kim-Daivis)가 지휘자 데니스 럿셀 데이비스(Dennis Russell Davies)와 결혼한 것은 대붕 선생으로 맺어진 인연이다.

1987년 9월 17일 70세 생신을 맞은 대붕 선생을 데니스가 미국으로 초청했다. 데니스는 그 때 칼리포니아 주 산타 크루즈 시에서 열리고 있는 ‘카브리요(Cabrillo) 현대음악 여름축제’의 음악감독이었다. 서독의 수도 본의 오페라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있을 때 데니스는 남부 독일 도나우에싱겐 현대음악축제에서 대붕 선생을 소개 받았다. 1970년대 말이다. 당시 오보에 주자로서 대붕과 가까이 지냈던 하인츠 홀리거의 소개로 만났다. 홀리거의 작품 소개에 따라 데니스는 다음 해 스위스 추릿히 극장에서 윤이상 작곡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을 지휘하게 되면서 대붕 선생의 작품에 큰 감동을 받게 되었다. 데니스는 1987년 8월 여름 대붕 선생을 카브리요 현대음악 여름축제‘의 ’레지던트 작곡가’로 초빙했다.

나는 대붕의 부름으로 아내와 딸 린다를 데리고 산타 크루즈로 가서 데니스를 소개받았다. 그 인연으로 뒤에 딸은 뉴욕에서 데니스와 결혼을 했다. 데니스가 2022년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초연하게 된 장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원작 ‘심판관’(The Trial 또는 Der Process) 의 신작 오페라 ‘K”(프랑스 현대 작곡가 Philippe Manoury의 현상 당선곡)를 지휘하기 위해 파리에 머무르고 있을 때 딸은 예쁜 외손녀를 해산 했다. 오페라 “K”의 초연날과 축하 리셉션에는 프랑수와 미테랑 전 대통령과 조르주 퐁피두 전 대통령 등 400여 명의 명사들이 참석했던 것으로 기억 된다.

우리 부부는 외손녀가 태어난 다음 날 부랴 부랴 파리에 도착하여 첫 손녀의 출생을 축하했다. 우리 딸은 대붕 선생이 맺어준 인연으로 낳게 된 아이의 한국 이름을 대붕의 성씨 다스릴 ‘윤’자와 아름다울 ‘미’자를 따서 ’윤미‘(尹美)로 지었다. 영어 이름은 ’이사벨 니콜‘(Isabel Nicole)로 지었다. 손녀의 이름이 이사벨 니콜 윤미 데이비스(isabel Nicole Yunmi Davies)로 된 것이다.

데니스는 유럽에서 대붕 선생의 작품을 오늘에 이르기 까지 계속하여 가장 많이 연주하고 있는 지휘자이다. 또 대붕 음악에 가장 정통하고 있는 지휘자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2017년 윤이상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데니스는 4월 8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이끌고 통영 대음악당에서 윤이상 작품들을 연주했다.

윤이상 선생 탄생 100주년 해에 데니스는 가장 먼저 축하 행사로 분주 했다. 통영 축제에 앞서 데니스는 2월 28일부터 열린 칼리포니아 샌 프란시스코의 ‘아더 마인즈 현대음악 축제’(Other Minds Festival)에서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콘서트를 지휘했다.

우리부부는 1988년 미국으로 이민 온 대붕 선생의 외동아들 윤우경씨 가족의 미국 후견인으로 정을 두터이 해 왔다. 대붕 까지 16대로 외동 아들로만 내려왔다는 윤씨 가문의 제 17대 외동 윤우경씨의 내력도 흥미롭다. 그의 부인은 북한 ‘피바다 가극단’ 출신 무용가 김순옥씨,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매로 성사된 그들 부부의 결혼 비화와 그들의 두 딸 수라, 이라 와의 관계에도 그 이야기가 많다.

대붕 선생과 부인 이수자 여사는 동베를린 사건, 평양 유학과 결혼, 다시 베를린, 그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택한 외동아들 가족의 후견을 우리 부부에게 간곡히 당부했다. 우리는 또 이 가족의 미국 영주와 생활 안정, 사회생활에의 동화를 비롯한 모든 후견에서 우리부부가 선생님의 당부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일제 시대, 미주 독립운동의 모체 대한인국민회 총회장과 재미한족연합회 재정위원장등 경력으로 대한민국의 독립훈장 애국장을 받은 김형순(金衡珣) 나의 조부님과 대붕 선생은 통영이 고향이다. 나는 오스트리아로 이주하기 전 2003년 김종훈 전 국회의원(당시 샌 프란시스코 총영사)과 함께 미국 중가주 애국선열 유족회 회장으로서 통영시와 조부님이 사셨던 리들리(Reedley)시와의 자매도시결연 사업을 성사시켰다. 자매도시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지내면서 통영시와 리들리 시 와의 관계증진에 힘을 썼다.

선조 때 부터의 지연적 인연은 나의 고향 마산에 까지도 확대된다. 대붕 선생은 한 때 마산 중학과 마산 제일여고에서 교편을 잡은 적이 있다. 당시 문학과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던 이상철 마산 고등학교 교장의 부탁으로 대붕은 마산 고등학교의 교가를 작곡했다. 가사는 후에 경남도 교육감도 지낸 이상철 교장이 직접 쓴 것이다. 마산고 제 15회 졸업생인 나는 고등학교 시절 교가를 통하여 대붕의 음악을 일찍부터 접해온 셈이다.

마산고 교가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아 다음에 부연하려고 한다. 여기 먼저 말하고 넘어 가고 싶은 것은 오늘 날 우리들의 언어에서 자취를 찾기가 어려운 언어 ‘자주’(自主)가 교가 속에서 높이 외쳐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힘찬 행진 곡조의 자주정신으로 되었고, 윤이상의 존재를 젊은 날부터 가슴에 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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