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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5일, 목요일

비엔나에 혜성처럼 나타난 한국인 윤 스빙함마 지휘자 – 생후 3개월 스웨덴으로 입양, 월간객석 8월호 인터뷰

비엔나에 혜성과 같이 나타 난 한국게 스웨덴인 지휘자 Jon Svinghammar초상
지난 6월 16일 비엔나 무직페라인 황금홀에서 비엔나 아카데미 필하모니 지휘로 연주회를 가지고 있는 윤 스빙함머 지휘자
지난 6월 16일 연주회를 마치고 무대 인사를 하는 윤 스빙함마 지휘자와 비엔나 아카데미 필하모니

이번 호의 글로, 필자는 ‘객석의 오스트리아 통신원’으로서 만 4년을 맞았다. 2019년 9월호를 위한 첫 기사를 보냈을 때, 오랜 언론인 생활 끝에 음악 문화 향상에 기여하게 되어 매우 기뻤고, 세계 제일 공연예술지의 통신원이 된 것을 큰 자부심으로 생각했다. 이제 86세가 되었지만, 이러한 기쁨과 자부심이 더 계속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일을 하면서 뿌듯할 때는 외국 타지에서 한국인의 무대를 만날 때이고, 가장 기쁠 때는 그의 삶과 음악을 기록 할 때다. 이번 기사에 소개하는 지휘자 윤 스빙함마도 그랬다.

비엔나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윤 스빙함마 지휘자

비엔나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윤 스빙함마(Jon Svinghammar:1982-)지휘자가 한국 음악사에 새로운 한 페이지를 더하게 되었다. 먼저 지적할 것은 한국에서 태어 난지 생후 3개월 만에 스웨덴의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가서 훌륭한 지휘자로 성장한 그의 출생 내력이 예사롭지가 않은 것이다.

다음으로는 체코와 독일, 오스트리아에서의 지휘자 수업이후 의미깊은 데뷔 끝에 비엔나를 거점으로 삼고 유럽 전역으로 뻗고 있는 그의 지휘활동과 지휘 예술이 각광을 받고 있는 모습도 예사롭지가 않은 것이다. 그의 온후하고 관대한 성품도 사람들의 마음을 끌고 있다. 그의 비엔나 뮤직페라인 황금홀 지휘를 작년 10월과 올해 6월에 두 번이나 보고, 인터뷰를 가져 보았다.

저를 처음 만나 악수하면서 자신이 입양아 출신임을 먼저 밝혔던 것이 추억에 남아 있습니다. 먼저 입양에 대하여 여쭈어 봐도 좋겠는지요?

– 불행하게도 제가 입양된 상황에 대해 아는 바가 너무 없습니다. 그 상황을 조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제가 아는 것은 제가 입양된 해에 친 어머니에게 세 명의 자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해 1월에는 쌍둥이를, 12월에는 저를 낳았다고 합니다

저가 스웨덴에 있는 우리 양부모님에게 입양된 것은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저의 어머니 이본네(Yvonne)는 교사였고, 저의 아버지 케네스(Kenneth)는 건설 노동자였습니다. 현재 두 분은 모두 은퇴생활을 합니다만, 매우 가족 중심적인 분들입니다. 저는 인구 800명의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숙부님 농장과 조부모님 집 옆에서 매우 행복한 유년 생활을 보냈습니다.

음악 공부를 하게 된 동기

음악 공부를 하게 된 동기는?

​- 제가 고향에서 떠나 웁살라에서 중등학교를 다닐 때 체코 출신의 음악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음악적인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체코 오스트라바(Ostrava)에 있는 야나첵 콘서바토리(Janaceck Conservatory)에 입학시험을 보도록 격려했습니다. 좋은 음악원에 합격했을 때 저는 약간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인생에 큰 꿈을 가지는 모험을 잘 이끌어 갔습니다.

저는 졸업 후 독일 바이마르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대학의 장학생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재학 중 오스트리아 그라츠 딜레토 그라치오소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로 취임하여, 그라츠 국립음대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완료 했습니다. 그후 비엔나 국립음대의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과정과 최고지휘자 과정을 수료하였습니다.

언제 지휘자로 데뷔하였습니까?

– 우연한 행운으로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오페라에서 오페라 카바레리아 루스티카나/팔리아치로서 데뷔 지휘를 하게 되었습니다. 빈 국립음대의 저의 교수님이 갈 시간이 없어서 교수님의 추천으로 대신 가게 되었습니다. 이 오페라 데뷔의 인연으로 저는 먼저 함부르크 국립 오페라단의 협업 지휘자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 오페라 극장에서 저는 켄트 나가노(Kent nagano)같은 대 지휘자들과 휼륭한 단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저의 개성적인 작품 해설이 어떻게 반응하는 가를 실험하고 다듬게 된 것이 크게 유익한 경험으로 되었습니다.

행운은 또 연달아 찾아 왔습니다. 2018년부터 6년간 비엔나 근교 Gars am Kamp의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상임 지휘자 일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저의 재임기간 동안 한국인 소프라노 이수연과 테너 스테판 박 등이 주연 출연자로 참여 하였습니다.

저는 이어 역사적인 비엔나 음악친우회 오케스트라 협회 오케스트라(Wien Orchesterverein der Gesellschaft der Musikfreunde)와 비엔나 아카데미 필하모니(Wiener Akademische Philharmonie)의 지휘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 악단들에는 상임지휘자가 없고 매년 초청제로 하는데, 저는 2019년부터 5년 연속으로 상임지휘자 처럼 지휘 초대를 받아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Ensemble-N은 제가 2018년부터 예술 감독이자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현대 음악 그룹입니다. 연주자들은 비엔나 심포니커와 빈국립음대 교수들, 전문연주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022년에 우리는 베를린의 한스 아이슬러(Hanns Eisler)재단으로부터 매우 권위 있는 보리스 페르가멘쉬코브 상(Boris Pergamenschikow Prize)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밖에도 2022년 이탈리아 아브루쪼(Abruzzo)지진 재해 재건작업에 오케스트라 연주를 통한 공헌으로 오스트리아 정부의 유럽 국가상(European State Prize)을 수상했습니다.

한국 광주에서 14세 때 비엔나로 유학을 와서 첼리르트가 된 정영씨와 결혼하게 된 경위는? 부인께서는 Gars am kamp 오케스트라 매니저를 지낸 후 지금은 공연 기획사 ‘정 프로덕션’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 우리는 서로 만난 날 미래에 곧 결혼 할 인연임을 직감하였습니다. 빈 시립음대를 졸업한 아내는 당시 빈 한국 대사관에서 한-오 오케스트라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 번의 전화 통화 후에 직접 만나 산책을 했습니다. 1년 후 2022년 우리는 결혼했고, 다음 해에 딸 릴리(Lily)가 태어났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마이클 임페리올리(Michael Imperieoli)의 말 처럼,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끝으로 친부모님들 찾기는 더 이상 하지 않으려는지요?

– 사실은 친 부모 찾아 3회나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결과 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재혼을 하시고 살아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저를 만나는 것을 아직 보류하고 계십니다. 저는 그 마음을 이해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월간객석에서 저를 한국에 소개하여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의 친어머님이 이 글을 읽게 되면 좋겠습니다.

러시아 거장들의 음악을 소개한 두번째의 뮤직페라인 연주회

지난 6월 16일 무직페라인 황금홀 연주회에서 피아노 협연을 한 Maximilian Kromer의 연주 후 무대 인사

윤 스빙함마의 지휘 스타일은 청중들로 하여금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협연자들에게 몰입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작년 10월에 이은 지난 6월 16일의 비너 아카데미쉐 필하모니 뮤직페라인 황금홀 연주의 경우가 이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윤 스빙함마는 작년에도 그랬듯이 우선 악보를 모두 암기하고 나선다. 6월 16일의 연주에서 그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winsky)의 발레 ‘불새’조곡(Suite aus dem Ballett ‘Der Feuervogel)과 세르게이 바실레비취 라흐마니노프(Sergei Wassilewitsch Rachmanifoff)의 교향곡 제 2, e-Moll, 작품 27, 모리스 라벨(Morice Ravel)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G-Dur(피아노 협연 Maximilian Kromer)를 악보 없이 지휘하면서 청중들을 순간도 허비함이 없는 무대 집중으로 몰입시켰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익혀 온 윤 스빙함마는 야나첵 콘서바토리에서 퍼쿠션과 피아노늘 전공했다. 그의 정확하고 신바람이 나게 하는 리듬감은 선천적으로 타고 난 한국인의 흥과 장단의 박동과 결부되어 청중들의 마음을 희락으로 넘치게 한다.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그의 운지법은 특별히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같은 대곡들의 연주에서 청중들의 심장까지를 진동케 한다.

인류 상호간의 사랑의 증진과 화목한 사회 창조가 음악의 목표

윤 스빙함마는 지난 몇 년간 1년에 약 6회의 대규모 오케스트라 콘서트와 5회의 소규모 콘서트를 지휘했다고 한다. 그는 매 콘서트를 암보(諳譜)로 임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는 또 그의 지휘가 세계화 시대에 인류가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고 있다고도 말했다.

지난 6월 16일 연주회 후 지휘자실에서 만난 윤 스빙함마 지휘자
스웨덴과 한국 광주에서 윤 스빙함마 지휘 연주회에 참석하러 온 양부모와 아내 정영씨 부모들-왼쪽으로 부터 양모 이본네 스빙함마(Yvonne Svinghammar))와 양부 케네스 스빙함마(Kenneth Svinghammar), Yon Svinghammar 지휘자, 장인 정경우, 아네 외조모 김삼순, 장모 이순영 제씨
윤 스빙함마 지휘자 연주회에 스웨덴과 광주에서 온 친지들 기념 촬영
2022년 비엔나 근교 Gars성 여름 페스티벌 예술 감독과 매니저 시절 성에서 결혼식을 가진 윤 스빙함마-정영 부부
양부모와 함께 결혼식 기념 촬영을 가진 윤 스빙함마-정영 부부
월간 객석 김운하 오스트리아 통신원의 2024년 8월호 월드 핫 윤 스빙함마 인터뷰-리뷰 기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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