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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금요일

김외련의 수필 ‘밥’

요리책을 출판하고, 요리 학원을 운영하는 김외련 작가는 손님 초대 요리 대접을 큰 기쁨으로 생각한다. – 2023년 바리톤 안민수 / 피아니스트 신미정 부부와 피아니스트 박상욱을 서울 평창당 자택 백운산방으로 초대했다.
김외련 작가는 2023년 린츠 주릭음악극장 한주헌 지휘자와 부인 독일 만하임 음대 전 피아노 강사 차승은 부부를 백운산방으로 초청, 요리를 대접했다. 자신이 만든 요리를 손님들이 즐겨 줄 때 무한한 앵복을 느낀다고 했다.
2022년 비엔나 방문 때 바덴에 있는 베토벤 하우스를 방문하고 – 오른쪽으로 부터 김외련 작가, 김충자 편집인, 김외련 작가의 남편 서울대 명예교수 김형국 박사

집밥의 소중함이 사라지고 있는 세태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내게 체화한 밥의 의미를 챙겨 본다. 사회변화는 본시 자연발생적이라 누구나 그 물결을 거슬릴 수는 없는 법, 최소한도 떠밀려 가지 않으려면 자신의 정체성 점검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내 일상에서 으뜸으로 중요한 밥과 밥상임에랴. 이건 자신뿐만이 아니라 가족이 얽힌 대사(大事)인 것.

시어머니는 내 막내아들인 당신의 장손자가 밥 안 해주는 색시를 만날까 봐 걱정이 태산이었다. 어머니는 일흔부터 세상을 뜨기까지 스무 해를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다.

남편이 “수지(큰딸)는 저이 남편에게 밥을 안 해주잖아요?!” 되물었다. 그 즉각에 “갸가 밥을 할 여가가 어딨노?!” 반응이었다. 그 이중 심리에 식구들은 박장대소했다. 큰딸은 병원 레지던트로 저 한 사람 챙겨 먹기도 힘이 드는 때였긴 했다.

모르긴 하지만 손자며느리는 비슷한 처지라도 밥하기를 은근히 종용했을 것이다. 애들 셋 키우며 약국 경영하랴 늘 만성피로에 찌들었던 나는 주말에 가족에 대한 사랑 본능이 발동해 음식을 하노라면 “역시 부엌에는 가모(家母)가 있어야 한다!”는 간접화법으로 식생활은 아내 전담임을 부르짖던 분이었다. 아전인수 혈족애의 극치였다.

밥상을 차리는 나는 삼중(三重)심리였다. 자식이 배고프다면 맛있는 음식을 뭘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어 허둥댔고 그러면 으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했다. 남편 경우는 타성에다 그때그때 컨디션에 따라 성의를 보탰다. 솔직히 시어머니 밥상은 짜증이 났다.

티브이로 세상을 보던 어머니는 어느 날, “요즘은 안들(아내)이 늙어갈수록 임자(남편) 밥을 안 해주는 세상이라카네…” 말꼬리를 흐렸다. 평소 어머니 표정에서 어떤 말보다 정확하게 의중(意中)을 읽을 수 있었던 나는 바로 “밥만큼은 염려 마세요,”했더니 어머니 또한 내 표정과 억양에서 진심을 읽었던지 적이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돌아가는 세태로 봐서 아들 밥걱정이 덜컥 났던 것. 그 세대가 거의 다 그럴 터이나 어머니에겐 ’밥심(힘)‘은 신앙에 가까웠다. 요즘에는 ’빵심‘으로 산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간식에 불과했다. 이점은 남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음식을 조리한다‘를 ’밥한다‘로, ’밥상을 차린다‘를 ’밥차린다‘로, ’생계를 위해 일한다‘를 ’밥벌이한다‘는 등 밥을 강조하는 표현이 많다. 심지어 인사말에도 ’밥‘자(字)가 들어갔다. 지금은 아침 점심 저녁 어느 때고 “안녕하세요?”라고 하면 그만이다. 해방둥이(1945년생) 내 세대까지만 해도 “아침 잡샀어예?(아침 식사 잡수셨어요?)”나 “저녁 잡샀어예?”로, 친구들 사이에는 “밥 묵었나?”로 통했다. 내 동향 한 절친 남편은 아직도 친구와 전화하면서 초성(初聲)은 “니(너) 밥 묵었나?” 새삼 정겹게 들린단다. 대대손손 보릿고개를 견뎌야 했던 민족에게 그런 어법은 자연발생적이었다 함을 나는 믿는다.

시어른은 자수성가한 분으로 만년까지 정미소를 경영했다. 덕분에 어머니는 쌀 걱정은 안 했을망정 유독 밥 식성이 까다로운 “영감님 시집”을 호되게 살았다. 밥이 조금만 질어도 조금만 되직해도 불같이 화를 냈고, ’밥이 맛있으면 반찬은 없어도 된다‘는 표현도 자주 했다. 그 지경에서 어머니 밥 짓기 달인 수준이었음은 자연스러웠다.

시어른의 이론은 전혀 사실무근이 아니다. 쌀은 완전식품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한 가지 부족한 단백질을 콩으로 보충하면 완전식품이 된다는 학자도 있다. 옛날 감방식사가 바로 콩밥만이었고, 오래 먹어도 죽은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 그 방증이었다.

​“국 한 그릇에 반찬 셋”인 일즙삼채(一汁三菜)가 원칙인 소박 밥상을 선호하는 남편은 반찬 투정이 거의 없다. 밥은 아니다. 질 좋은 쌀로 지은 약간 되직하면서 뜸이 잘 든 밥을 좋아한다. 이쯤이면 옛날 가마솥 밥에 가깝지 않은가. 아무리 반찬이 좋아도 밥이 시원찮으면 한마디쯤 잔소리를 한다. 정미소 집 아들 눈썰미로 쌀 감별에도 매 눈이다. 산지(山地)가 많은 지방에서 나는 쌀을 선호하고 못지않게 도정(搗精) 날짜를 중시한다. 쌀을 살 때는 그것들부터 따진다.

내가 좋아하는 빵이나 감자, 고구마를 가끔 식사로 대용할라치면 남편의 식성이 부담스럽다. 나는 특히 아침식사로 ’아메리칸 브랙퍼스트’를 좋아했다. 베이컨 2~3쪽, 에그 프라이 2개, 버터와 잼을 바른 토스트 1~2개, 주스 한 잔, 사과 반 개, 커피 한 잔이면 대만족이었다.

지금은 어쩌다가 한 번이다. 어느결에 나도 ‘밥심’에 의존하게 됐다, 영양가가 충분한 것 같아도 ‘빵심’이 옛날만 못하고, 소박한 밥상이라도 오히려 ‘밥심’이 낫다. 어릴 적부터 먹던 음식의 소화 흡수과정에서 쌓인 여러 가지 미생물(대표적인 것이 유산균)이 노화에 따라 그 작용이 새롭게 생긴 것보다 더 우세한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노인은 한 끼 한 끼로 산다.”는 말이 지금 내 일상에서 절실하다. 노인의 신진대사율이 낮음은 그만큼 흡수율이 낮음과 같다. 한 끼를 아주 잘 먹고 다음은 소홀히 하기보다는 매끼를 적당히 잘 먹어야 건강식이라는 뜻이다. “노인일수록 음식은 소량 자주 먹는 게 좋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부연하면 노년은 탄수화물 섭취도 중요하다. 살이 빠지면 근력까지 줄기 때문에 단백질과 함께 젊은이들에게는 체중 증가의 원흉인 탄수화물을 적당히 더 섭취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 점에서 빵류는 내게 맞춤한 간식이다.

오래전 두세 사람분 일본제 철 밥솥을 샀다. 한창 바쁠 때인데도 불구하고 동네 수입품 가게에서 눈에 띄자 덮어 놓고 샀던 것. 무려 삼백 가지가 넘는 쌀 종류가 있을 정도로 밥맛에 민감한 일본 사람 제품이라 질은 따질 것도 없고, 자그마하게 앙증맞은 모양에 우선 혹했다. 과연 전기밥솥에 댈 게 아닌 밥맛은 물론, 누룽지까지 눌려 먹을 수 있어서 십상이었다. 본격적으로 쓰기는 평창동에 이사 온 뒤 아이들 셋 다 제가 갈 길 가고 내외만 남고부터다. 재미를 톡톡히 붙여 그 후 근 30년을 애용하고 있다.

편리한 전기밥솥을 두고 번거로움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의아해하는 친구도 있다. 내 나름대로 방도가 있다. 밥솥에 쌀을 앉히고는 타이머를 세팅한다. 신경 쓰지 않고 밥이 되는 동안 반찬을 준비한다. 상차림까지 짧게는 3, 4십분. ‘국보’(국을 좋아하는 사람) 남편에게는 누룽지가 그 대용이 되기도 한다.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얼마 전에 살림꾼 지기가 선물한 최신 전기압력밥솥을 써보고 그동안 전기밥솥의 눈부신 발전에 놀랐다. 그 이후 초대 손님이 많을 때 요긴하게 쓰고 있다.

철솥 밥맛을 아는 아들은 나보다 한 수 위다. 연년생 아들을 셋이나 키우면서도 프랑스제 철 솥밥을 고수하고 있다. 여느 철솥이 녹스는 결점을 특수 코팅으로 보완하고 성능도 좋다며 내게도 사주었다. 색깔과 모양새도 세련됐다. 아마도 그 나라에서는 스튜 같은 음식용 솥이지 싶다. 댓 명 밥을 지을 때 애용하고 있다.

아들이 부모에게 첫선을 보이려 우리 집 식사에 색시를 데리고 왔다. 밥을 잘 먹어서 인상이 더 좋았다. 밥을 잘 먹는 사람은 내게 항상 성실한 인상을 준다. 며느리도 그렇다. 외국에 사는 두 딸도 주식은 어디까지나 밥이되, 파스타 같은 이탈리아식⦁중국식⦁남미식 등 다양한 밀가루 음식도 그들에게는 어엿이 밥 대용이라 글로블 시대를 실감한다.

전기밥솥 밥이건 솥 밥이건 밥이 익어가는 구수한 향기는 집 특유의 아늑함을 불러일으킨다. 내 어릴 적만 해도 식구들을 밥상에 불러 모으는 냄새였다. 향수 어린, 질리지 않고 시장할 때는 오히려 더 절절한 밥 냄새.

밥은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그런 밥을 두고 밥하기가 지겹다고들 한다. 반복되는 일은 지겨워지기 마련. 아무리 식생활의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이 간절하다 해도 집에서 부엌을 없애는 사태는 난감하다.

역발상(逆發想)으로 창의적인 의미를 부여하면 오히려 지겨움은 기쁨으로 바뀌고 그래도 남는 지겨움은 그나마 견딜 만하다. 음식은 하는 사람의 먹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요 정성이며, 열정인 것. 때로는 지겹다 해도 결국은 가족에게 돌아오는 사랑과 정성은 거룩하다고 말하고 싶다.

때로는 식사 초대로 기분전환과 함께 음식과 담소를 나누는 즐거움, 아이들이 떠나버린 빈 둥지를 자유 공간으로 삼고 내외가 식도락도 누릴 수 있음을 생각해 보라. 남자들이 요리하는 추세에 남편과 협업하는 방식도 모색해 보라. 경제적으로 꼭 부유하지 않아도 된다. 공력만 들이면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은 값싼 제철 식재가 얼마나 많은가. 여기에다 평생 쌓아 온 실력만 발휘하면 된다.

사흘이 멀다고 날아오는 친지나 지기의 치매 소식은 이제 일상이 됐다. 듣는 순간은 의기소침하고 불안해진다. 어차피 삶은 개별적이 아닌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자신을 달래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일찍이 초고령사회를 맞은 일본은 치매 연구가 우리보다 더 활발하고 치밀한 것 같다. 오랜 기간을 투입, 폭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한 치매 이환율 조사 결과를 모두 AI에 넣고 물었다니 ‘독서가 가장 확실한 치매 예방법’이라고 대답했단다. 실제 장수 인구가 많은 지역에 상대적으로 도서관 수가 많았다고 한다.

들이댈 통계는 없지만 나는 요리도 독서에 못지않다고 믿는다. ‘요리는 예술’이라고 한다면 본질은 창의력과 열정이다. 더해서 집중력도 기본 요건인 요리야말로 오히려 독서를 능가하지 않을까. 이쯤이면 나는 밥과 밥하기 예찬론자다. 친구들과 친지들은 ‘특이 체질’, ‘별난 사람’이라고들 한다.

중병 요양 과정에서 체득한 밥과 밥상의 가치 덕분일까, 어떤 연유로든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 음식이 당장 미각을 즐겁게 하고, 건강에도 유익하다고 믿고 있으므로 가끔은 남편에게 ‘내 손이 약손이다’, ‘나는 집에서 돈을 벌고 있다.’고 곧잘 기염을 토한다(202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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